하늘에는 고추밤나비와 두더지 잠자리가 교미 중이었다. 하늘이래봤자 빨랫줄 1m 위이긴 하지만 날갯짓 소리가 보랏빛 아기 고양이 울음소리로 들렸던 것은 어쩌면 마치 이웃집 토토로가 군가를 부르는 것과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눈꼽을 제거한 손가락을 바지에 스윽 문지르며 빨랫줄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열두 명의 투숙객이 함께 쓰고 있지만 빨랫줄은 항상 텅 비어 있었다. 방금 꺼내 신은 양말이라도 벗어주고 싶었지만, 나도 어쩔 수 없었다. 그게 나의 유일한 양말이었기 때문이다. 토토로는 빨래를 자주 하는데, 젖은 채로 다시 입기 때문에 빨랫줄을 이용하진 않는다. 나는 허전한 기분이 가시지 않아서 빈 빨랫줄 위를 향해 한 마디 했다.
“얘들아, 빨랫줄에 누워서 교미하지 않을래?”
내 말을 알아들은 얘들이 빨랫줄에 누워서 교미를 하려 했다. 하지만 맘이 바뀐 나는 심술이 나서 빨랫줄을 힘껏 흔들어 버렸다. 하지만 한층 더 신음소리만 커졌을 뿐이었다. 쳇. 가위를 어디 뒀더라. 하지만 내가 토토로의 젖은 서랍을 막 열려던 찰나에 토토로가 막 군가를 부르기 시작했으므로 나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군가를 따라 불렀다.
“나아그네 갈 길은 오오직 하나! 그으곳을 향해서 간다~♪♪”
내 노래에 박자를 맞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군가가 끝나야 줄을 끊을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먼저 멈춘 쪽은 신음소리였다. 어쩐지 나는 빨랫줄을 그냥 두기로 했다.
내가 토토로의 옆방에 살게 된 지도 벌써 1년이 넘었다. 우리 하숙집은 사람들이 잠깐 묵고 나가는 걸로 유명한데 나와 토토로만은 1년 넘게 이곳에 살고 있다. 하기사 토토로는 도대체 언제부터 ‘이웃집(정확히 말하자면 이웃방)’에 살고 있었는지 감도 안 잡히니, 나완 비교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올 한 해 아침마다 토토로의 군가를 듣다 보니, 나도 어느 새 부동자세로 군가를 따라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군가는 의외로 아침운동의 효과를 내는 것 같다. 이건 하숙집 아줌마가 맛없는 고기반찬을 내놓으면서도 욕을 먹지 않는 비결이기도 하다. 하숙집 아줌마는 가끔 토토로에게 점심저녁에도 군가를 부르도록 하는데, 토토로는 방에 처박혀 못들은 척 넘겨버린다. 나도 솔직히 밥맛 향상을 위해 토토로가 점심 저녁에도 군가를 불렀으면 좋겠다. 아니면 신선한 야채 반찬이 나오던가...
토토로가 군가를 마치고 행군까지 마치고 돌아와 쇠고기 후리가케를 한웅큼 입에 물었을 때, 나는 그것을 눈치채고는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토토로가 왼쪽 발 네 번째(마지막) 손톱을 깎지 않은 것이었다. 왜 발에 손톱이 나는가는 아직까지도 궁금해하기만 할 뿐. 차마 물어볼 수는 없었지만, 나는 다급하게 아줌마에게 눈짓을 했다. ‘이봐요 아줌마 제발 어서 토토로의 손톱을 좀 보시란 말예요!’ 하지만 아줌마는 내가 밥을 더 달라고 할까봐,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이런 눈치 없는 아줌마야!!’ 물론 평소 밥을 너무 많이 먹어온 나의 탓도 있지만, 사실 반찬이 맛없어서 밥이라도 많이 먹는 것뿐이다. 아줌마에게 계속 발신을 보내는 사이, 토토로는 어느새 밥그릇을 거의 비워가고 있었다. 나는 점점 초조해져 갔다. 마치 토토로 손톱에 낀 마지막 때처럼 아슬아슬했다. ‘토토로가 마지막 네 번째 손톱을 자르는 날에는 그 때도 함께 떨어져나가리라.’ 아줌마마저 토토로 왼발의 네 번째 발가락의 손톱을 보는 날엔...
아...토토로에겐 미안하지만...하...절로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그걸 본 사람이 나 혼자라는 것이었다. 그 때였다. 아줌마가 마지막 남은 싱싱한 선인장 뿌리를 먹기 위해 손을 쭉 뻗다가 숟가락을 식탁 밑으로 떨어뜨린 것이다. 그 숟가락은 에버랜드 튤립大축제 때 기념품으로 받아온 튤립 모양의 숟가락! (그림) ‘아줌마, 어서 숟가락을 주우세요! 튤립을 뽑듯 사뿐히 들어올리세요!’ 아줌마! 아줌마! 제발 어서!!! 나는 흥분한 나머지 입을 벌려 “아줌마!” 라고 소리치고 말았다.
“응?” 아줌마가 여전히 시선을 피한 채 들릴 듯 말 듯 조그맣게 대답했다. 그런데 머뭇머뭇 대꾸하지 못하는 나를 대신해서 토토로가 입을 열었다. “아주머니, 여기 튤립 숟가락이요.” 이럴 수가, 토토로는 순식간에 숟가락을 들어올렸던 것이다. 아마도 손톱 덕분에 감각적인 두 발을 이용해 가뿐히 들어올렸으리라... “그래. 토토로는 역시 예의바른 고양이구나.” 눈치 없는 아줌마가 토토로와 눈을 맞추며 방긋 웃음지었다.
결국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군가를 부르는 예의바른 고양이는 이웃집으로 돌아갔다. 젠장, 발에 손톱이 나는 고양이만 아니었어도...나는 왼쪽 아랫니와 셋쨋이 사이에 낀 쇠고기 후리가케 일부의 고깃물이 다 빠져 텁텁한 맛을 느끼며, 어떻게 하면 아줌마에게 토토로의 손톱에 대해 알릴까에 대해 골똘히 생각했다. 이곳에서는 발에 난 손톱이라는 단어를 입 밖에 꺼내는 것은 금기였기 때문에 쉽사리 말을 꺼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물론 뿐만 아니라 고양이털을 빗자루로 쓰지 않기, 고양이가 사용하는 화장실은 사용하지 않기, 고양이에게 말을 할 때는 ‘요’자를 쓰지 않기 등 금기가 좀 많은 곳이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나는 결국 어렵지 않게 바디랭귀지를 사용하기로 했다.
나는 먼저 아줌마를 불러낸 뒤 “야옹” 이라고 고양이 소리를 내며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고, 그 다음엔 내 발을 가리킨 뒤 나의 네 번째 손톱을 아줌마에게 들이대었다. 허나 쭉 뻗은 나의 발을 보는 순간, 난 내 실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빨판이 촘촘하게 박힌 나의 발은 고양이의 그것과는 전혀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내 신체적 한계를 실감하고 있을 때쯤, 의외로 아줌마는 진지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마치 아직 덜 익은 사과를 베어 물며 ‘오, 신데렐라여.’ 라고 되뇌이는 문학소녀의 표정 같았다.
“그래. 문어야...하지만 이젠 소용없단다. (울먹이며) 토토로는 오늘 밤...우리 하숙집을 떠나니까...(소녀처럼)그러니 너도 이제 그만하란 말이야!”
이 아줌마가 갑자기 왜 이러는 건가. 아까 먹은 선인장 가시에 눈물샘이라도 찔린 것일까? 눈물을 훔치며 주방으로 들어가는 아줌마를 보며 나는 속으로 어처구니없음, 어처구니없음, 어처구니없음을 반복해서 생각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의 빨판들이 닭살처럼 돋아나 고개를 흔들며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토토로라면 이럴 때 뭐라고 말할까? 그 고양이라면 예의바른 대처법을 잘 알고 있을 것 같았다.
앗- 그 때 돋아난 나의 빨판들에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이씨- 며칠간 보일라가 들어오지 않아 차가운 방바닥에 앉았더니 빨판에 부담이 생긴 것이다. 나는 최대한 빨판에 부담을 주지 않게 자연스럽게 몸을 움츠리며 주방을 향해 말했다. “아줌마, 그니깐 오늘은 보일라를 따뜻하게 틀어주시는 것이 좋겠군요.” 젠장 내가 이빨에 고기가 끼는 문어만 아니었어도 이런 하숙집에 올 일은 없었을 텐데...
“토토로! 이 예의바른 고양이야. 잠깐 이리 나와보지 않으련?” 나의 부자연스러운 말투 때문이었을까? 토토로는 나오지 않았다. 나는 내가 왜 토토로를 만나려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토토로는 내가 너무 촉촉해서 만질 수조차 없다고 했다. 그 고양이는 반건조 오징어가 먹고 싶다며 내 다리의 물기를 안타깝게 바라보곤 했다.
“토토로. 토토로! 토! 토! 로오-!”
먹물까지 흘려가며 토토로를 힘껏 불렀지만, 녀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손톱을 보지 않았을 텐데...’ 괜시리 그의 손톱을 본 것에 대한 죄책감이 밀려왔다. 어쩐지 토토로의 군가를 듣고 싶었지만 알고 보니 토토로는 이미 떠난 모양이었다. 그리고 토토로 왼쪽 방에 살던 ‘어린이’도 집을 싸고 있었다. 어린이는 지난 월요일에 들어온 친군데, 벌써 나가다니 조금 아쉽다. 아는 일 없이 시간은 흘러 어느 새 점심식사 시간이 오고 있다. 오늘 점심엔 야채를 먹을 수 있을까? 아줌마가 말도 안 되는 울상을 짓고 있으면 어쩌지...?
양말을 벗어 들어 빨랫줄에 널어 본다. 빈 방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이 세 번째 빨판과 다섯 번째 빨판 사이를 스쳐지나갈 때, 나는 고개를 숙여 12개의 발을 본다. 어찌 된 영문인지 네 번째 빨판들이 일제히 사라지고 없다.
-The End-
글 : 싱클레어+아니추쿠
옮김 : 은서